종종 우리는 '철학과 사상이 대체 무슨 소용이야'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조차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철학과 사상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법' 또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일례로 효를 중시하는 유교의 정신은 유명합니다. <논어> 제13편 자로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葉公 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매우 매우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아비를) 숨겨줍니다. 그 가운데 정직함이 있습니다.)
설사 부모가 잘못했더라도 이를 숨기는 것이 곧 효이고, 정직하다고 공자는 생각한 것입니다. 공자의 이런 생각은 그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법 깊숙히 자리 잡았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죠.
형사소송법 제224조(고소의 제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
형사소송법 제235조(고발의 제한) 제224조의 규정은 고발에 준용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특수한 범죄행위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잘못했을지언정 고소/고발이 불가능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누군가가 한 생각이 2000년을 훌쩍 넘은 현대에도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고 그것의 옳고그름을 생각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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