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언론이 태풍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호들갑’이라 말한다. 재난에
대한 피해가 없었음에도 정부가 과잉대응했다는 이유이다. 이 이야기를 보며 대학 수업의 내용이 떠올랐다.
미국의 재난 정책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재난 정책의 사이클이었다. Mitigation – Preparation – Response – Recovery, 우리 말로는 완화 – 대비 – 대응 – 복구라고
한다. 미국만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 사이클을 가져와 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제4장부터 제7장까지, 예방 – 대비 – 대응
– 복구 순으로 명시되어 있다.
틀린그림찾기처럼, 차이를
찾아보자. 완화와 예방. Mitigation을 번역하며 우리는
미국과 달랐다. 미국은 재난을 완화하고, 우리는 재난을 예방한다. 이 때 교수님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재난에는 백신이
없다.” 재난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우리 모두가 알 듯 재난은 병처럼 예방접종으로 막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기는지는 일단 일어나봐야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방’이란 단어로 번역했다. 인식의 차이일 테다. 이 미묘한 단어의 차이가 정신에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의 재난 대처에 대한 인식이 나뉜 것이다.
이 주장이 비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자들이 일컫듯 단어는 정신적인 힘을 가진다. 재난이 예방할 수 있는,
막을 수 있는 대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사람들의 자세도 바뀐다. 막을 수 있다면 적극적인
대응은 ‘호들갑’이 될 수 있지만, 막을 수 없다면 적극적인 대응은 당연한 것이 된다.
해당 보도를 작성한 언론들은 재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호들갑’로 보았다. 이들은
정부의 호들갑을 지적했고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재난이 막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일리 있을 테지만, 막을 수 없었을 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재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이다. ‘예방’을 ‘완화’로 바꾸고, ‘재난은 막을 수 있다’에서
‘재난은 막을 수 없다’로 바꿔야 한다. 이 미묘한 단어 차이를 줄여, 재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호들갑’일 수 없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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