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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할 이유_재난으로서의 세월호

D.Dic. 2019. 4. 17. 16:25

어느덧 5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5년 전 해외에서 뉴스로 보면서 실감하지 못했다. 귀국한 뒤 사회에 남아있는 상처와 논쟁덕에 그제서야 현실이 어떤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5년 전 부터 시작된 기억과 논쟁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멈추지 않았다. 매해 이 즈음이 되면 또다시 회자되는 기억 속에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러가다 죽었는데 뭘 이렇게까지 하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 개인은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감성적인 영역을 제하고 서술하고자 한다,

 

 

1. 피해 규모의 관점에서

 

21세기 들어 선진국에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웬만하면 3자리 수 규모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기후 변화가 극심해지며 재난 자체의 강도가 강해짐에도 인프라와 사회 제도 설계를 통해 이를 완화시켜온 것이다.

 

일례로 매미, 차바 등 과거보다 더 강한 태풍들이 오더라도 재산 피해액은 늘어날지언정 국내 인명 피해는 20세기와 비교도 안될만큼 적다. 1936년 '3693호' 태풍이 1232명의 사망·실종으로 국내 태풍 통계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역대 강수량 최대였던 2002년 '루사'가 246명의 인명피해에 그쳤다는 걸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 관점에서 보면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304명의 인명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전국단위 사고도 아니었고 인프라와 통신망이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발전한 현대사회에 300여명의 인명 피해는 인프라와 제도 수준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 재난 대응의 관점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여러가지 논의가 더 붙겠지만 복수의 사람들의 판단 미스와 안일함으로 발생한 '인재'라는 데 대해 부정하는 전문가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재난 대응의 관점에서 다른 '인재'와 비교하고자 한다.

 

국내 사례 중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재난, 인재로 인해 대형 사고가 난 케이스를 꼽자면 대표적인 것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강남 한복판의 최신식으로 지어진 백화점이 한순간 무너져내린 그 광경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함께 한국 건축 규제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세월호 침몰 사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두 사건의 발생은 비슷하다. 삼풍백화점은 설계 단계에서의 조작과 부실시공 위에 급격한 하중 변화로 붕괴하였다. 반면 세월호의 경우 개조 후 과적에 따라 급변침 후 복원되지 못하고 침몰하였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재난의 경과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대부분의 건물 붕괴가 그러하듯 일순간에 일어났다. 사전에 징조가 있었다지만 이는 관측으로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우므로 결국 사고의 경과가 빨랐다고 볼 수 있으며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구조 인력이 관여할 여지는 없었다. 구조 인력이 할 수 있던 최선책은 이미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가급적 빨리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 뿐이었다.

 

반면 세월호 침몰은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었다. 8시 52분 최초 신고 접수부터 완전히 침수되는 10시 31분까지 약 1시간 30분의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구조인력의 관여로 추가 구조가 가능했다.

 

또 다른 큰 차이는 사고 후 정부의 대응이었다. 삼풍백화점은 관계자를 신속히 처벌하고 원인을 정밀하게 밝혔다. 당시 대응의 경과와 원인분석 과정은 다큐멘터리로까지 제작되었다. 또한 관련 규제를 강력히 손봄으로서 예방의 토대를 닦았다. 반면 세월호는 급변침 이후 복원성 회복에 선박 개조 및 과적이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밝혔으나, 급변침한 이유와 개조의 합법성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조위 등 대응 조직 구성도 지지부진했고 이후 운영과 관련 규제 설치 등도 미흡했다.

 

요컨대 삼풍백화점와 세월호 모두 누군가의 욕망으로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사고 후 구조'에 구조 인력의 운영과 정부의 후속대처가 매끄러웠고, 세월호는 '사고 간 구조'임에 구조 인력은 안일했고 정부의 대처는 미흡했다.

 

 

3. 정리

 

세월호 침몰은 21세기 한국의 재난 통계를 갱신했고 그 과정에서 정부, 언론 등 한국 사회가 얼마나 재난에 무능한가를 적나라게 노출시켰다. 이는 인본주의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국격'의 관점에서도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좌우를 떠나, 사상을 떠나 잊어서는 안된다.

 

정말 그 기억을 잊고 싶다면, 방법이 잘못되었다. 재난의 기억을 억지로 잊으려한들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떠오른다. 진정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미안한' 기억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에 '고맙다'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세월호 방명록에 남긴 '미안하다. 고맙다'는 이야기처럼 세월호 아이들에게 고마울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