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드디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참정권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축하할 일임에도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는 일부 단체들의 이야기를 보면 씁쓸하기 그지 없다.
이런 발언은 크게 2가지 편견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하나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했다는 발상이다. 정치에 참여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지적으로 완전히 성숙해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그런 수준에 불충분하다는 인식의 결과이다.
첫째, 여러 법령들에서는 이미 성년으로서의 자격을 만 18세로 보고 있다. 군 입대, 청불미디어 관람, 아르바이트, 운전면허 등 각종 영역에서 이미 만 18세를 기준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격 분야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민사상 미성년자가 만 19세인 것은 맞으나 오히려 민사 미성년의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더 이상 만 19세를 미성년의 기준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OECD 포함 여러 국가들 또한 이러한 방향에 함께하고 있다. 아예 학제 기준이 만 18세 또는 그 이하인 곳들도 존재하며 이러한 변화는 전문적인 식견에서 만 18세 또는 그 이하를 성년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에 근거한다. 물론 다른 나라가 한다고 해서 우리도 해야 할 의무는 없다만, 한 두곳이면 모를까 이런 나라들이 아주아주 많다면 우리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바보라서 만 18세에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셋째, 이미 우리 민주주의의 변곡점에는 언제나 청소년들이 함께 해왔다. 4.19, 5.18과 같은 민주화 이전의 사건들뿐만 아니라 이번 촛불혁명 때도 청소년들은 그 현장 속에 있었다. 항상 참정의 중심에 있었는데 선거권만 없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인 셈이다.
이렇게 만 18세의 미성숙에 반박하고 나면 남는 두번째 전제는 바로 정치 혐오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마치 오염된 폐기물과 접하는 것과 같다는 인지가 있으니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솔직히 이런 발상은 반박할 가치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논리의 문제를 떠나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은 윤리적으로, 교육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어른이라면 정치가 가지는 사회적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더러우니 너네는 하지말라고 할 게 아니라, 깨끗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게 맞지 않나. 피하고 싶다고 피할 일도 아닌데 피하게만 하는 건 어른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본다.
또한 이런 주장에 동참하고 있는 교사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자격 결여이다. 스스로가 교사라면 더더욱 학교가 가진 사회화 기능이 얼마나 막대한지, 자신들의 직업이 가진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생각, 이런 발상으로 다가올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발목잡는다 한들 다가올 변화가 꺾이고 무너지는 것은 아닐테다. 그러지 말고 같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대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막을 수 없는 변화는 맞서기보다 함께 환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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